정해의_글:초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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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의_글:초인종 [2025/05/04 08:22] – 제거됨 - 바깥 편집 (Unknown date) 127.0.0.1정해의_글:초인종 [2025/05/04 08:22] (현재) – ↷ 문서가 초인종에서 정해의_글:초인종(으)로 이동되었습니다 sea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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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초인종======
  
 +우리집 초인종은 언제나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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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오후 4시 반경이 되면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
 +집사람은 잠복근무(?)를 하였습니다. 그 시간대에 문앞에 서 있다가 초인종이 울리면 재빨리 문을 열어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결과 집사람은 가방을 둘러메고 아파트 출입문을 뛰어나가는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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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전원을 끊어버리는 것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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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오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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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은 다들 휴대전화를 쓰는데..., 정말 필요하면 전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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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층 어디선가 사는 한 학생이 어머니에게 쫓기듯이 저녁밥을 먹고, 아니면 저녁밥조차 굶은 채 학원 공부하러 가는 스트레스가 아마도 우리집의 초인종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울리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
 +37년의 교육인생에서 저는 거의 절반을 생활지도부에서 학생 생활지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학교에서도 제가 늘 맡아주었기 때문에 고마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것이 꼭 필요한 업무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산악부를 담당하는 지도교사였고, 당시 산악부 아이들은 요즈음 말로 각 중학교의 최고 "짱"들은 모두 모이는 동아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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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들을 데리고 북한산 인수봉 밑에서 야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암벽을 오르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리더로 오르다가 사고가 일어나면 직접적인 책임이 저에게 있을 수밖에 없으나, 다른 유능한 리더와 함께 오르다가 사고가 나면 지도교사의 책임은 어느 정도 감소될 것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저는 더 필요한 일을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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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에는 "청소년보호법"이 없었기 때문에 야영장의 모닥불 가에서 아이들에게 소주를 먹였습니다. 아이들은 "병권(甁權)"을 잡은 나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과의 유대감은 형성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아이들이 질풍노도기의 스트레스 속에서 구제될 수 있었던 것은 무식하게 덤볐던 저의 배짱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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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교사생활을 하던 학교는 종로구에 있던 학교입니다. 속세말로 부자촌 성북동이 포함된 학군이었습니다. 많은 제벌 2세들이 그 학교를 거쳐 갔습니다. 그중에 몇명은 또 제가 담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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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아이들은 언제나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 중 몇 명은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저에게 걸렸고, 그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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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고등학교에서는 모의고사나 정기고사 보기 직전에 교내흡연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이제 중학교에 현실화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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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따와 교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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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들 모두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의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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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초인종이 전원을 되찾는 날, 그날이 아마도 우리 아이들이 스트레스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는 날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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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우리집에 택배 배달원이 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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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는 우리집 문을 손으로 두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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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해요. 우리집 초인종은 고장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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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요. 아파트 1층 초인종은 많이 고장났어요. 특히 엘레베터식에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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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일중학교 교장이 정년을 맞이하여 여러 선생님께 드립니다 --